2016.1.30~31. 흐림
봉돌이랑 둘이서..
운장산 칠성대를 가기로 했었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리산 서북능선으로 향했다.
그곳엔 비박터가 아주 많으니깐.
산행을 시작하면서, 내겐 오랜 염원이 있었다. 얼음꽃이 바람에 찰랑거리며 영롱한 소리를 내는 장면을 보는 것.
눈꽃이나 상고대는 이제 식상하다.ㅎㅎ
영동일대 폭설 예보와 영남 알프스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는 첩보를 뒤로 하고
지리산을 향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말갛기만 한 지리산이라면 설국이 된 영.알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러나 지리산은 얼.음.왕.국.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 멀리서 봐도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니 더 신비로웠다.
착하게 살아오니 이런 복도 다 받나보다. 푸하하..
전북 청소년 교육원에 주차를 하고 출발.
보통은 우측 건물 옆으로 돌아 세걸산, 세동치로 올라갔었는데
등산로 아니니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도로 따라 올라가다보니 빙빙 돌기만 할뿐 고도가 높혀지지 않는다. 바래봉 순환길이란다.
오늘 우리는 바래봉에 갈 생각이 없는데..봉돌과 나 " 뜻밖의 여정- 바래봉" 편을 찍게 되지나 않으려나 했다.
하지만 이길도 참으로 한적하고 아름다운 비박터로도 손색이 없다. 길 따라 계곡물도 흐르고.
계속 돌아간다.
눈꽃도 없다.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ㅎㅎ
이 회색빛 나무들..
자세히 보니 가지들이 온통 얼음으로 코팅되어 있다.
눈이 번쩍 뜨이고 힘이 불끈 난다.
ㅇ
너무 예쁜 풍경에 발걸음도 가볍게 룰루랄라~
요기다 텐트 칠까?
맑은 수정막대기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고..
부운치로 올라가는 등로가 나왔다. 앗싸~ 드디어 올라간다.
부운치 1.2km 30분이면 가겠네.
가지들은 얼음으로 코팅되어 있고 그위에 눈들이 덮혀있다.
계곡물을 담아 올라가려다 얼음이 지천인데 뭐하러 무겁게 물을 짊어질까.. 그냥 가자.
안부에 올라서니 이렇게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겨준다.
하얗고 투명한 왕방울처럼 생긴 얼음구슬이 열려있는 나무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터를 잡았다.
햇빛을 받아 덮힌 눈이 녹은 가지엔 투명한 얼음들이 반짝인다.
바람 한 점 없는데다 많이 추운 날씨는 아니다.
딱, 겨울 비박하기엔 좋은 날씨.
지난 주, 한파주의보 떨어진 날, 봉돌은 선배 두분이랑 신불산 비박 갔다 추위에 개고생 하고 왔다.
한파주의보가 떨어지는 특별하게 추운날은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노선을 결정한 나는 참으로 현명하다. ㅎㅎ
운무가 자욱하던 산마루가 해가 지면서 말갛게 걷혔다.
날이 밝았지만 세상의 색채와 명암은 아직 조정이 필요하다.
하얀색은 익명의 색이라 했던가.
하지만 자연에서의 하얀색은 특별한 색이다. 알비노들이 그렇듯 가장 도드라진 색일 수 밖에 없다.
온통 얼어붙었지만 견디기 힘든 추위는 아니다.
결로 때문에 고민하다 드레곤테일을 가져갔는데 오히려 내부까지 얼어붙어 버리니 더 편하다. 그냥 털어버리면 되니깐.
힐레베르그 텐트들은 이너텐트들이 축축해져서 싫다.
너무나 예쁜 붉은 태양이 솟아 있었는데..
사진은 그냥 누르스름하네 ㅠ.ㅠ
오늘은 세동치까지 가서 거기서 전북교육원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이 아름다운 얼음왕국들이 곧 얼음 지옥으로 변할 줄이야..
얼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지들이 모두다 아래로 늘어져 길을 막고 있었다.
마치 얼음그물들 처럼..
유리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커텐을 걷으며 다니거나 그 아래를 기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배낭을 눌러대는 무거운 가지들에 짓눌려 힘을 두배는 더 쓰며 걸어야 했다.
넘고 기고 얻어 맞고 ..
묵직한 얼음 그물들과 사투를 벌이며 진행해야 했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선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거지. 난 공짜를 바라는 사람은 아니다.
아이고..진짜 힘들다.
얼음나무
이 사진을 끝으로 카메라 아웃.
바꿀때가 됐지 했더니 결국 맛이 가버렸다.
나뭇가지를 흔들면 찰랑찰랑 영롱한 풍경소리가 났고
온 산이 거대한 샹들리에처럼 빛난다.
길게 이어진 능선 끝에 바래봉이 선명하다.